(뒤늦은) 2024 서울국제도서전 관람기

2024년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치뤄진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관람기를 작성하는군요(...)

올해는 왜 3층에서?

2024 서울국제도서전은 작년부터 삐그덕대기 시작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깊게 관여한 오정희 소설가를 홍보대사로 위촉한 것에 대한 보이콧부터 시작해 도서전에 방문한 김건희씨 경호원이 항의하던 송경동 시인이 강제로 연행되는 사건이 있었죠. 그 이후에 문체부가 도서전 예산 문제에 손을 대고 결국 "정부 지원금 전액 삭감"이라는 칼까지 빼어들고 말았죠. 이로 인해 항상 코엑스 1층에서 열리던 행사도 이번에는 3층에서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갔다. 그런데...

이번 도서전의 주제는 "후이늠"이었습니다. 걸리버 여행기 마지막에 나오는 이성과 지적인 말이었죠.

코엑스에 도착한 시간은 토요일 10시 정도였습니다. 그때부터 이미 줄이 어마어마했지요. 네이버에서 사전 예약을 한 사람들은 모두 1시간 이상 줄을 서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간신히 입장 팔찌를 받고 조금 쉰 다음에 3층으로 가니 현금판매 줄이 너무나도 널널한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서부터 주최측의 관리가 엉망이라고 느꼈습니다.

입구는 C4 였습니다. 막상 또 입구는 한산한...

들어가자마자 좌측으로는 이번 도서전의 주빈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해외 전시가 있었고 정면으로는 민음사, 문학동네와 같은 대형 출판사가 각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우측으로는 소규모 출판사가, D관에는 독립 출판사들과 강연을 위한 자리, 이번 도서전에 관련된 전시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지도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도서전의 모든 문제가 여기서부터 발생합니다(...)

왜 이번 도서전은 문제가 많았나

도서전에 다녀온 거 자체는 좋았습니다만, 운영에 너무나 많은 문제가 있었다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더라구요. 그래서 먼저 이 부분부터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될 거 같았습니다. 저는 왜 이번 도서전에 문제가 많았다고 생각할까요?

기: 예산 부족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돈이 없었다는 점이겠죠. 서울도서전의 회계가 문제였었다는 문체부의 말을 믿던, 무언가 뒤의 힘(po엉덩이wer)이 작동했건 국가 지원금이 전액 삭감된 이번 도서전이 열악한 상태에서 열렸다는 건 사실일 겁니다. 그렇기에 조금 더 싼 전시관을 고르다보니 장소가 작아지고, 수익을 위해 더 많은 인원을 끌어들이니 인원은 넘치는 문제가 발생하는 건 어찌보면 필연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건 아니죠.

승: 입장에서의 혼란

도서전 구경을 마치고 2시 30분쯤 나왔을 때 1층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

아까도 말했지만, 네이버 사전예매를 하고 왔는데 1시간 이상 기다렸고 더 늦게온 사람들은 2시간 정도도 기다렸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현장 예매는 30분 정도만 걸렸다고 하네요. 이럴거면 현장 예매 부스를 줄이고 네이버 사전예매로 전환해서 빠르게 처리했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왜 그냥 바라만 보았는지 의문입니다.

전: 인기있는 곳을 왜 몰아놨죠?

이전보다 장소가 좁아졌고 참가업체도 줄었지만, 부스의 크기는 생각보다 줄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뭐가 줄어들었을까요? 걸어다니는 공간이 줄었겠죠. 그리고 2023년에는 13만명이 방문했고, 2024년에는 15만명이 방문했다고 합니다. 걸어다니는 공간은 줄었지만 인원은 늘었다라는 이야기는 안쪽이 터졌다는 이야기와 같지요(...) 도서전 내에서 인파가 몰린 구역은 크게 네 곳이었습니다. 부스 배치도에서 빨간 색으로 네모친 곳들입니다.

일단 대형 출판사를 몰아놓은 것부터 문제였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책을 구매하는 곳이니 당연히 몰릴 수 밖에 없는데 몰리는 곳 * 몰리는 곳 * 몰리는 곳 ... * 몰리는 곳이 되어버리니 저 쪽은 아예 터저버렸죠. 제대로 책을 볼 수도 없었고 각 출판사들도 계산과 질서유지에도 벅차서 정신이 없어보였죠.

그리고 그 위쪽에 토스는 부스가 굉장히 멋있고 프로그램이 좋았지만 그 때문에 줄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렇게 인기있을 줄 알았다면 부스 크기를 늘리는 것도 좋았겠죠.

그리고 그 위 D관의 독립출판사 구역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책상과 의자만 덜렁 있는 가운데 꾸역꾸역 몰아넣어 정말 돌아다니기도 힘들었거든요. 그러니 책을 제대로 볼 수도, 살 수도 없었습니다. 대형 출판사는 사람들이 미리 가서 살 책을 골라갈 수라도 있었지, 독립출판사는 그런 것도 불가능했는데 어떻게 책을 팔라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제 전시 구역도 좋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진행이 너무 느려서 병목이 생기는데 그걸 관리하는 사람도 없었고, 주제에 맞는 책들이 전시가 되어있는지도 의문이었구요.

결: 야후들의 도서전

그래서 이번 도서전은 저같이 느긋하게 구경하려고 했던 사람에게는 최악의 경험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성인 중 절반이 책 한권도 읽지 않는 나라에서 도서전이 도서에 열광하는 사람들만 가는 곳은 아닐텐데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안좋은 경험을 겪게 해준 게 다음 도서전에도 굉장히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다행이도 2025년 도서전은 다시 1층에서 한다고 하지만 지금과 같은 운영으로 내년에는 관리를 잘 할 것이다? 글쎄요...

그래도 좋았다

단점만 주르르륵 말하고 좋았던 거 말하려니 뻘쭘하지만, 그래도 다녀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책을 사는 걸 좋아하니깐요. 새로운 트렌드를 구경하는 것도 필요한 일입니다. 지금도 조금씩 도서전에서 샀던 책을 읽고 있고 있습니다. 언제 다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다 읽으면 서평? 독후감?도 써야겠지요.

이번 도서전의 승리자. 안전가옥 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