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완벽한 삶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 퍼펙트 데이즈(2023)

완벽?

퍼펙트(Perfect)의 어원은 모르겠지만 그에 대응하는 번역인 완벽(完璧)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알고 있다. 중국 어느 시대인지는 모르겠지만 흠집하나 없는 옥 구슬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탐낸 이웃나라 왕이 15개 성과 바꾸자고 협박요청했을 때 어느 신하가 자기가 이 구슬과 함께 돌아오겠다고 호헌장담을 하며 갔다고 한다. 이웃나라 왕이 구슬만 가져가려고 하니깐 "이거 구슬에 사실 흠집이 있음 ㅎㅎ" 하면서 돌려받고서는 바로 "약속 안지키면 이거로 내 대가리 깬다. ㅎㅎ"라고 해서 성도 받고 구슬도 돌려받았다는 훈훈한(?) 이야기다.

여기서 흠이 없는 구슬이 완벽이고, "사실 흠집 있음 ㅎㅎ"에서 나온 말이 하자(瑕疵)이다. 완벽은 하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인 것이다. 물론 이렇게 진지하게 들어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언가를 평가할 때 상당히 주관적이니깐. "이정도면 완벽하지."라는, 어찌보면 맞지 않는 말도 우리는 자주 사용하지 않나?

나날, Days

영화에서는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하루하루를 보여준다. 그에게는 수 많은 날이 있었겠지만, 우리는 영화가 보여주는 날만 볼 수 있으니깐 그것만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에서 보여주는 히라야마의 첫번째 날은 다음과 같다. 아침에 깔끔하게 일어나서 이불도 깔끔하게 접고, 날씨도 나쁘지 않고, 비록 늦었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도 있다. 길을 잃은 아이의 엄마를 찾아주지만, 엄마는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고 (히라야마의 손을 잡은) 아이의 손을 물티슈로 닦고 갈 뿐이다. 일을 끝마치고 나서 목욕도 하고, 비가 오지만 저녁에 단골 가게에 자기가 주로 앉는 자리에 앉아 주인장이 주는 술과 함께 야구를 본다. 집에 들어와 독서를 하다 잠을 잔다.

두번째 날에는 갑작스럽게 같이 일하는 타카시와 썸을 타는(썸탄다는 건 일방적인 동료의 주장같지만) 아야가 일하는 곳으로 찾아온다. 먼저 퇴근하려던 타카시가 오토바이가 고장났다며 차를 빌려달라고 사정을 해댄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아야가 자기 차에 있던 테이프의 노래를 듣고는 좋은 노래라고 한다. 먼저 아야를 보내고 타카시가 갑자기 자기 차의 테이프를 팔자고 난리를 피운다. 여차저차 타카시를 보내고 밤 늦게 들어온 히라야마는 목욕도 하지 못했고 단골 가게도 가지 못해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운다.

그가 비번인 날에는 자신의 청소복을 빨래하고, 그가 점심을 먹으면서 찍은 사진을 인화맡기고, 이전에 맡긴 사진을 찾아 잘 찍은 것들만 보관한다. 외출하기 전에 집을 청소하고 선술집에 가서 여주인의 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마친다.

그의 나날은 계속된다. 하루는 자신의 조카가 찾아오고, 자신의 여동생을 만난다. 같이 일하던 타카시가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여 혼자 모든 구역을 청소하기도 하고, 자신이 자주 가던 선술집 여주인과 전 남편이 재회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Where is a perfect day?

그에게 "완벽한 날"은 언제일까? 자신의 스케쥴대로 모든 게 이루어진 날? 자기 조카를 만난 날? 자기 취향을 남에게 인정받은 날? 영화에서 보여준 히라야마의 모든 날에는 잡으려면 잡을 수 있는 '하자'가 존재한다. 모든 것이 완벽해보이는 첫째 날에도 같이 일하는 동료가 늦게와서 더 수고를 하고, 목욕을 하고 밥을 먹으러 갈 때 비가 오기도 한다.

자신의 취향을 인정받고 그 가치도 인정받지만 그 대가로 그는 목욕과 저녁을 포기해야만 했다. 오랫만에 보는 조카와 즐거운 날을 보내지만, 그 대가로 자신이 아끼는 화초에 물을 주는 것도 조심해야하고 불편한 곳에서 잠을 자야한다. 여동생을 만나 조카를 돌려보내지만 흘러들어오는 추억에 흐느낄 수 밖에 없다.

영화가 보여주는 히라야마의 날 어디에도 '완벽'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대체 완벽한 날은 어디에 있는거지?

Not perfect day, "Perfect Days"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을 나오는 길에 문득 눈물을 마시는 새이영도, 2003 라는 판타지 소설에서 주퀘도 사마르크가 떠올랐다. 주퀘도는 자기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했던 것을 어떻게든 뒤엎을 기회를 얻었고 성공했다. 하지만 그 순간,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 지를 깨달아버렸고 후에 자신이 기생하고 있는 갈로텍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건 완성이 아냐. 빌어먹을 가필(加筆)이지. 염병할 붓질은 한 번에 끝내야 한다. 일필휘지야, 갈로텍. 나는 괜찮은 삶을 살았다. 주퀘도 사르마크의 삶은 찬란했다. 그래. 나는 죽음의 거장이었다. 내 최고의 순간이 언제인지 아나? 그것은 내 존재의 모든 시간이었다. 나는 항상 최고였다. 내 마지막 실패는, 그것이 내 실패이기에 이미 소중한 것, 최고의 것이었다. 그것은 완전무결함에 난 흠집 같은 것이 아니었어. 그것까지도 포함해서 완전무결한 것이었다.

영화 제목은 처음부터 '완벽한 날'이 아니었다. '완벽한 나날들'이지. 완벽한 나날들이라는 것은,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더라도 마지막에 웃을 수 있는, 아니 때로는 울더라도 그것을 간직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완벽한 나날들일 것이다.

설령 비가 오면 어떠리, 그래도 내 단골 집에서 괜찮은 하이볼 하나 먹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괜찮은 순간이지. 잠자리가 불편하면 좀 어떠리, 나의 조카를 오랫만에 본다면 그것 또한 괜찮은 순간이지. 여동생이 떠나간 자리에 서서 혼자 흐느끼면 어떠리, 추억을 돌이켜볼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순간 아닐까. 혼자 모든 구역을 담당하느라 지쳐 쓰러지는 순간이 와도,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다른 동료가 채워진다.

좋은 순간, 나쁜 순간, 그저 그런 순간, 나쁘지 않은 순간, 그런 순간순간들이 모여 날을 이루고 그런 날이 모여 나날을 이룬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 그것은 "삶"이 된다. 그래, 완벽한 삶이라는 것은 내가 보내는 삶 그 자체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