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은 인간 그 자체. 에이리언: 로물루스 (2024)

에이리언: 로물루스Alien: Romulus, 2024를 보고 왔습니다. 스타필드 하남에 있는 메가박스의 돌비 시네마 관에서 보고 왔지요. 해당 관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여기로

이번 에이리언: 로물루스 이야기를 하려면 예전 시리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거 같긴 합니다. 물론 영화 내적으로 완전한 서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영화 자체로도 무섭게즐겁게 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왜 진작 로물루스 호를 박살내지 않았음?" 이라는 질문의 답은 예전 시리즈가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지난 시리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에이리언Alien] 구 시리즈(이하 넘버링 시리즈)는 외계 생물체 (후에 제모노프 XX121Xenomorph XX121이라고 이름이 붙는) 에이리언과 인간과의 사투를 그리는 작품입니다. 에이리언 1편은 리들리 스콧이 감독을 맡아 에이리언 시리즈 중 가장 높은 평을 받지만 그 후 2,3,4편은 각각 제임스 카메론, 데이비드 핀처, 장피에르 죄네(아멜리에Le Fabuleux Destin d'Amélie Poulain, 2001의 감독)라는 명감독들이 맡아 각자의 색깔을 보여주기도 했죠.

이후 프리퀄 시리즈에서는 리들리 스콧이 아예 제작을 맡아 에이리언의 기원을 다루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2012, 에이리언: 커버넌트ALIEN: COVENANT, 2017 이 나왔고 이번이 에이리언 시리즈로서는 7번째 작품이 되겠습니다. 제작은 여전히 리들리 스콧이, 감독은 [맨 인 더 다크Don't Breathe, 2016 ]의 감독이었던 페데 알바레즈가 맡았습니다.

넘버링 시리즈는 "생존물"이다.

넘버링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시고니 위버가 연기한 "엘렌 리플리"죠. 그녀의 여전사적 면모는 [터미네이터Terminator] 시리즈의 사라 코너와 더불어 80년대 헐리우드의 대표적인 여전사 캐릭터가 되었죠.

순서별로 에이리언 1,2,3,4(...)

에이리언 넘버링 시리즈의 기본적인 골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엘렌 리플리과 주변인들이 어디론가 향한다.
  2. 거기서 에이리언을 마주친다.
  3. 다 죽거나 많이 죽는다.
  4. 그래도 리플리는 어찌어찌 이겨낸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2편은 에이리언의 소굴로 뛰어드는 영화이고 3편에서 리플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요. 하지만 영화사 놈들은 4편을 위해 리플리를 다시 살려내죠. 그래도 영화의 기본은 "인간을 사냥하는 생물로부터 살아남는 인간"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프리퀄은...?

프로메테우스의 엘리자베스 쇼(누미 라파즈),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캐서린 다니엘스(캐서린 워터스턴)

프리퀄 시리즈에서도 이 기본 골격은 유지됩니다. 나올 수 없는 리플리 대신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엘리자베스 쇼, 커버넌트에서는 캐서린 다니엘스가 생존자여전사 역할을 맡게되죠. 그렇지만 프로메테우스나 커버넌트는 에이리언과의 사투보다는 에이리언의 기원에 조금 더 집중한 영화입니다. 그러다보니 약간 설정집 같은 느낌도 존재하는 게 프리퀄 시리즈였죠.

그렇지만 이 '설정집'스러움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좋은 예로는 프로메테우스에서 보여준 엔지니어 - 인간과 인간 - 인조인간의 관계가 있겠네요. 엔지니어는 인간을 만들고, 인간은 인조인간을 만들죠. 둘 다 창조주와 창조물의 관계이죠. 인조인간을 만든 피터 웨이랜드는 창조주가 되었지만 더 욕심을 부려 영생을 탐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의 창조주를 찾아 영생에 대해 답을 얻으려고 했죠. 물론 답을 찾지 못하고 저승으로 갔지만

뭐 이런 부분들이 좋은 예겠지만, 그래도 설정집스러운 영화는 보통 평이 안좋죠. 실제로 커버넌트는 흥행에 실패했구요. 그래서 이번 로물루스에서는 그런 부분을 싹 빼고 원작의 생존물적 요소를 대폭 살렸습니다.

드디어 이번 작품 이야기를 한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은 에이리언 시리즈 답게 레인 케러딘이라는 여자 농부입니다. 웨이랜드 유타니 사가 개척한 식민 행성에서 일을 하고 있죠. 재미없는 개그나 하는 앤디라는 합성인간과 같이 계약 시간을 채워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려고 했으나 관리자는 레인이 광산으로 전출되었고 계약 시간은 두배가 되었다는 말만 전해줍니다. 차라리 혁명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좌절하던 그녀에게 이전에 알던 타일러라는 사람이 접근합니다. 타일러는 궤도에 웨이랜드 유타니의 퇴역선이 방치되어 있고 여기에서 동면캡슐과 연료를 탈취, 같이 행성을 탈출하자고 제안하죠. 퇴역선에 접근하기 위해 앤디가 필요하다는 말도 같이 하구요. 레인은 망설이다가 받아드립니다. 그렇게 로물루스라는 이름의 퇴역선에 들어가게 되죠.

여기까지 배경을 설정하고 캐릭터들을 던져놓았다면 그 뒤 이야기는 다들 아시겠죠?

감독의 특기가 잘 발현된 영화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페데 알바레즈는 맨 인 더 다크라는 걸출한 공포영화를 연출하였습니다. 맨 인 더 다크는 자신의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 안에서 소리만으로 위치를 알 수 있는 군인 출신 맹인이 공간과 어둠에 익숙하지 않은 침입자들을 사냥상대하는 영화죠. 어라... 공간과 어둠에 익숙하지 않은 침입자... 소리만으로 위치를 알 수 있는 짱 센 무언가...?

네, 어찌보면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을 하게 된 페데 알바레즈였습니다. 정말로 이번 영화와 찰떡인 분인거죠. 헐리우드에서 점프 스케어Jump Scare, 갑작스럽게 무언가가 튀어나와 놀라게 하는 연출 방법를 가장 잘 쓰는 감독 중 손가락 안에 들어갈 감독이 에이리언을 맡았다? 진짜 영화 보는 내내 쫄렸습니다. 꼭 타이밍도 제 생각과는 달라서 두배는 더 놀란 거 같습니다. 공포 영화로서 매우 좋은 영화였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죠.

이전 시리즈를 영리하게 잘 가져온 영화

​또 하나 이번 영화의 좋은 점은 꼽자면 이전 시리즈를 영리하게 잘 가져온 영화라는 겁니다. 페데 알바레즈가 자신이 에이리언 덕후라고 말했던 것을 증명한 영화기도 하죠. 처음 20세기 스튜디오 로고 장면부터가 3편의 그 모습이고, 나바로가 휴대용 엑스레이로 자기 몸 안을 확인하는 장면도 3편에 나오죠. 타일러가 레인에게 총 쏘는 법을 알려주는 장면은 2편에서 힉스가 리플리에게 총을 알려주는 장면과 오마쥬됩니다.

이 외에도 꽤 많은 장면들에서 이전 작들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에어리언을 즐겁게 보신 분들이라면 더 즐겁게 보실 수 있을 거 같아요.

가장 큰 장점은 가장 큰 단점이기도

단점이 없는 영화는 없지만, 이번 영화에서 단점으로 꼽을 수 있는 건 장점을 뒤집었을 때 보이는 점입니다. 점프 스퀘어가 훌륭한 영화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거밖에 없다는 말이 되기도 하고, 이전 시리즈를 많이 가져왔다는 뜻은 새로운 게 없다는 뜻도 되니깐요. 영화가 보여주는 전반적인 분위기에 치중하다보니 캐릭터가 약하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모두가 나쁘지 않은 연기를 보여주었음에도 앤디 역을 맡은 데이비드 존스의 연기만 눈에 띄었죠.

합성인간 앤디를 연기한 데이비드 존스는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되는군요

그래도 좋은 시리즈물이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이번 에이리언: 로물루스로 인해 에이리언 시리즈의 생명은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에이리언: 커버넌트의 흥행 실패와 함께 [데드풀과 울버린]에서 이야기했던 디즈니와 20세기 폭스의 합병이 이번 시리즈를 취소시킬뻔 했거든요. 그렇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훌륭하게 시리즈를 부활시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러니 제발 커버넌트 다음 영화로 프리퀄 3부작 좀 완성시켜주세요